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지 고든 바이런 (문단 편집) === 여성편력: 200명 === 그러한 잘생긴 외모 때문인지, 방탕한 생활을 했던 부친으로부터의 유전인지 여러 여인들과 만나 사귀었다. 그런데 남녀도 귀천도 가리지 않았던 성편력이 현대의 관점으로 보기에도 만만치 않다. [[유부녀]], [[과부]], [[얀데레]]에 '''이복 누나'''도 있었으며 심지어 그리스로 가는 도중에 어느 유부녀를 하룻밤 [[NTR]]했다가 남편에게 걸려서 결투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 밖에도 내키는대로 방탕한 생활을 하며, 귀족이자 상원의원이면서도 하층민 여성과 성관계하기를 꺼리지 않았다. 결국 이복누나 [[어거스터 리]]와의 근친상간 파문으로 1816년 추방당하듯이 잉글랜드를 떠났지만, 이 때부터가 그의 본격적인 여성편력의 시작이었다. 잉글랜드를 떠나 [[이탈리아]], [[스위스]]를 전전하면서 별의별 여성들과 관계했는데, 문헌에 따르면 당시 그와 성관계를 맺은 여성이 최대 '''약 2백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심지어 스폰서였던 '메리 셸리'의 의붓여동생 '클레어 클레어몬트(Claire Clairmont)'와도 성관계를 맺어 딸을 얻으면서 사이가 복잡해졌다. 참고로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의 작가로 유명한 인물이고, 메리의 어머니는 세계 최초의 페미니스트로 저서 <여성의 권리옹호>를 발표하며 평생을 여성 인권 향상에 매진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이다. 사실 명문대 엘리트 + 고위 정치인 + 유명한 시인이라는 엄청난 스펙에다 미모까지 뛰어난 남성이 낭만시로 단련된 달콤한 말로 접근해오면 여자들의 입장에서는 매력을 느끼지 않기가 힘들다. 현대로 비교할 만한 인물이라면 역시 같은 잉글랜드인이자 예술인이며 '''여자 4천여 명, 남자 4백여 명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믹 재거]]가 있다.[* 다만 믹 재거는 숫자가 너무 과장되어 있다고 불평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무엇보다도 둘 다 쾌락주의자이자 [[양성애]] 성향이 있었다는 점까지 비슷하다. 그래도 믹 재거는 자기 자식들을 끔찍히 아끼고 경제적 지원을 해주며 돌보기라도 했지 바이런은 사생아인 알레그라부터 유일한 적자인 에이다도 버리다시피 할만큼 아버지로서 함량 미달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